갈라디아서 1:8 · 로마서 5, 8
갈라디아서로 돌아가는 순수한 복음
10 / 14 / 2026
장재형목사는 오늘의 문화와 트렌드 속에서 복음이 소비재로 전락하지 않도록, 신앙의 뿌리를 가장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려세웁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성탄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성탄의 가장 명료한 해설로 제시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의 선물로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을 삶의 차원에서 풀어냅니다.
그가 복음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해명하는 데 가장 신뢰하는 창구는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죄와 의, 율법과 은혜, 심판과 구원, 그리고 성령 안의 자유까지 복음의 지형도를 가장 치밀하게 그려낸 책으로,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1장, 5장, 8장을 통해 “왜 오직 예수인가”라는 질문의 최종 해답을 분명히 합니다. 로마서 5장의 새 아담론은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와 사망 아래 들어갔으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통치, 곧 은혜와 생명의 질서가 열렸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아는 것”만큼이나 “지키는 것”을 중대하게 여깁니다. 이 지점에서 갈라디아서는 장재형목사가 거듭 불러오는 경계의 나팔입니다. 초대교회 안으로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이 복음에 할례를 덧붙이려 했던 사건은, 복음이 타협될 때 생명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였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21세기의 교회 현실에 정직하게 대입합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복음+무언가”를 덧붙이려는 시도는 여전히 반복됩니다.
그는 교회의 정체성을 개혁교회, 곧 “Re-formed—다시 빚어진 공동체”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개혁은 전통의 보존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로의 귀환을 의미합니다. 교회사는 두 축, 곧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기독론과 어떻게 구원받는가라는 구원론의 긴장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 구원론의 왜곡, 곧 복음의 순수함 위에 행위와 규례, 인간의 권위가 포개지며 진리가 흐려진 상황에 대한 신앙의 각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의 구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과거의 표어가 아니라 오늘의 생존 규칙입니다.
이 복음 수호의 관점은 선교 현장에서도 뚜렷합니다. 최근 장재형목사가 라틴 아메리카로 사역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그는 그 지역의 긴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되 구원의 충분성에 관한 복음적 원칙을 분명히 밝힙니다. 특정 전통과 의식이 신앙의 풍성함을 돕는 한에서 존중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처럼 기능하기 시작할 때 복음은 희미해집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구원의 전부라는 사실이 선명히 선포될 때, 사람들은 행위와 관습으로 짜여 있던 무거운 멍에에서 풀려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경험합니다.
장재형목사의 복음 이해에서 핵심은 “충분성”과 “독점성”의 균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에 충분하며 동시에 대체 불가능합니다. 다른 어떤 매개나 성취도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원리를 교회 운영과 제자훈련, 목회 리더십의 기준으로도 삼습니다. 교회의 프로그램과 전략은 복음을 전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수단이 목적을 덮어 버릴 때 교회는 속도를 내지만 방향을 잃습니다.
복음이 희미해졌을 때 교회는 왜 힘을 잃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단호합니다. “말씀의 칼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스데반이 구약과 이스라엘 역사를 꿰뚫는 통전적 이해를 바탕으로 최후까지 담대히 증언했듯, 오늘의 성도도 성경의 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배워야 합니다.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복음의 내러티브를 몸으로 외울 때, 우리는 일상의 수많은 장면에서 복음의 창을 열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탄을 다시 생각할 때 그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었던 우리가 어떻게 새 아담이신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지 되짚어 보자고 권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갈라디아서의 고백이 구호가 아니라 실제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의와 자기 연민 사이를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은혜의 통치 아래 서 있는 자가 됩니다. 죄의 기억은 남아도 정죄는 끝났고, 자기연민은 사라지며 감사가 자랍니다.
결국 관건은 고백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건물의 규모나 프로그램의 화려함이 아니라, 어떤 고백 위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도 동일하게 권합니다. 로마서로 복음의 논리를 배우고, 갈라디아서로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며, 요한복음 3장 16절로 성탄의 이유를 삶으로 증명하자고. 그리고 그 고백을 가정과 일터와 이웃에게로, 지역과 민족과 열방에게로 흘려보내자고.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지치지 않습니다.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단순하지만 거룩합니다. 순수한 복음을 붙들라,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살라, 그리고 그 복음으로 세상을 밝히라. 이것이 성탄이 다시 복음이 되는 길이며, 교회가 다시 교회가 되는 길이며, 우리의 삶이 참 소망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는 길입니다.
